愛河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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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하일기외전

징기스칸과 징기스칸 프로젝트

독행도자(Aloner) 2024. 10. 16. 23:44

징기스칸,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몽골제국의 초대 대칸(테무친)을 일컫는 존칭인데...

그는 대영제국의 전성기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그러니까~ 재래 방식으로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침탈하여 손아귀에 넣었던 푸른 늑대의 총수이다.

그의 이름을 딴 독일록그룹이 바로 6인조 혼성그룹(징기스칸)이 있고~

 

또, 내가 대한민국의 서민의 한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지구상 곳곳에 내 발자욱을 남길려는 계획을 한마디로 일컬어 "징기스칸 프로젝트"라고도 한다.

그럼, 여기서 1979년 창단 이래 50년 가깝게 꾸준히 팬들로 부터 사랑을 받으며 변함없이 활동해온 독일의 록그룹 징기스칸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고져 한다.

https://youtu.be/1AXlVZRpweI?si=jFsAMXhVCTpfQyCe

 

1979년 서독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랄프 시겔과 경제학 박사 겸 작사가인 베른트 마이눙거에 의해 프로듀싱된 그룹이다.

그들은 Boney M.의 성공을 모델로 하여 먼저 본인들의 곡 '징기스칸' 의 데모 테이프를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보내 예선을 통과했다.

이후 루이스 헨드릭을 포함하여 6명의 멤버를 오디션을 통하여 선발하여 1979년 3월 17일 독일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그들의 대표곡 '징기스칸'으로 4위에 입상하며 데뷔하였으며 순식간에 유럽 차트를 석권하며 히트 가수의 위치에 올랐다.

 

원년 구성 멤버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면 각각 아래의 서술과 같다.

  • 스티브 벤더 : 1946년 11월 2일 독일 마인츠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카를 하인츠 벤더(Karl Heinz Bender). 

2명의 형제가 있으며 아버지는 전쟁으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1964년 경부터 가수 생활을 시작한것으로 보이며 1972년에는 Jeremy.B라는 가명으로도 활동했다. The Poor Things , The Soul Five , Black Panthers, Charly and the Neptunes, The Pages라는 그룹들의 리더로 활동하였다. 1979년에는 징기스칸의 멤버로 들어가 데뷔하여 인상적인 대머리 스타일로 활동하였으며 이후 1980년까지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직후 1981년부터 그는 그룹을 탈퇴하여 제작 사업을 시작하였고 그는 1985년 해체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나 2005년 러시아 올림픽홀에서 30000명 관중들 앞에 서서 복귀하여 마지막 공연을 하였고 2006년 5월 9일 환갑을 한참 앞두고 독일 뮌헨에서 폐암으로 인해 향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병에 걸린 사실을 대중들에게는 알리지 않았 던 듯하다.

세상을 떠난 멤버로는 루이 헨드릭 포트기터와 벤더 2명이다. 반면 스티브 벤더는 포트기터보다 나이도 더 많고 17년을 더 장수한 셈이다.

신장이 171cm였고 팀 내 남자 멤버들 중 최단신이였다.

징기스칸 당시의 모습이 유명하기 때문에 그를 완전 대머리로 아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 그 전의 가수 활동 당시의 모습을 보면 장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탈퇴 후 발표한 노래들에서도 그의 머리카락은 잘 자라나 있었고 2005년도에도 마찬가지였다.

1964년 5월 8일 결혼했고 1974년 12월 7일 딸도 가졌다.[2]

  • 볼프강 하이헬 : 1950년 11월 4일 독일 메이센에서 태어났으며 두명의 나이 차이가 나는 이복 형제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독일 카셀의 아트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1976년에는 루체른의 바 경영학교에 가기도 했으며 치과학을 공부하였다. 밴드활동도 하였으며 1979년 랄프 시겔에게 징기스칸의 멤버로 아내와 함께 들어가 데뷔하였고 그룹 해체 후 1986년에 이혼하였다. 그 이후에는 무대의 작곡가, 프로듀서등으로 일했고 2001년~2003년에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헨리에테와는 이혼만 했을 뿐이지 아직도 친구로 지낸다. 헨리에테와의 사이에는 아들 쿠르트(1978년~)가 있다.

2005년에는 헨리에테 하이헬, 에디나 팝, 스티브 벤더등과 함께 복귀하였으며 계속해서 그렇게 활동하다가 2018년2005년부터 2007년경까지 징기스칸에서 활동했던 슈테판 트라크를 포함한 4명의 가수들과 같이 에디나 팝, 헨리에테 하이헬의 징기스칸과는 다른 또 하나의 징기스칸 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볼프강 하이헬은 징기스칸 그룹을 배신했다. 징기스칸이 멀쩡히 활동하는 와중에도 자기 멋대로 징기스칸을 따로 차려서 활동하는가 하면 자기 마음대로 몽골 정부와 협약하여 징기스칸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노래 징기스칸의 뮤직 비디오를 자기 마음대로 몽골식으로 어레인지해서 다시 촬영했다.[5] 딱 여기까지만 랄프 지겔이 묵인했다. 가장 결정적인 일은 원래 있던 '칸'인 슈테판 트랙을 빼서 자기 마음대로 차린 '대립 징기스칸'의 '칸'으로 삼았고 이로인해 징기스칸은 안 해도 되는 오디션을 개최해야만 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랄프 지겔은 볼프강 하이헬에 대한 활동을 불허했다. 그렇게 랄프 지겔은 오디션을 통해 새 '칸'인 클라우스 쿠프레이트를 선발했다. 여기에 볼프강 하이헬이 징기스칸이라는 그룹 명의 소유권까지 주장하면서 둘은 겉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갔고 결국 소송으로 맞붙었다. 이 소송에서 볼프강 하이헬이 패했으며 결국 볼프강 하이헬은 독일을 떠났다.

볼프강 하이헬에게 모질게 당한 랄프 지겔은 새 징기스칸을 차리면서 과거 동영상에서 볼프강 하이헬을 최대한 안 보이게 교묘히 편집하고 있다.

그 외에도 볼프강 하이헬은 인격이 별로 좋지 않은데 가수 하기 싫다는 아내 헨리에테를 억지로 끌고 와서 징기스칸의 멤버로 만들었고 이게 원인이 되어 징기스칸이 해체된 이듬해에 볼프강과 헨리에테는 이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계속 친구로 남았다.

'칸' 역할을 하던 슈테판 트라크가 볼프강 하이헬을 따라가자 랄프 시겔은 하는 수 없이 새 '칸'으로 클라우스 쿠프레이트를 뽑았다. 반면 슈테판 트라크와 같이 활동하던 안젤리카 에를라허는 슈테판 트라크와는 달리 볼프강 하이헬을 따라가길 거절하고 팀에 남았다. 그리고 클라우스 쿠프레이트와 안젤리카 에를라허는 2023년, 새 징기스칸이 결성될 때 새 징기스칸의 정식 멤버로 승격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2006년 7월 16일, 몽골 건국 800주년을 맞이한 자리에서 징기스칸 세계 아카데미 회원으로 승인되었다.

2018년 1월 15일 몽골 외무장관에 의해 몽골 문화 대사로 임명되었고 베를린에서 인증서를 받았다.

동년 6월 18일에는 대통령에게 몽골 최고의 영예 우정의 메달을 수여받았고 22일에는 징기스칸이 태어난 지역의 명예시민이 되었다.

2020년에는 몽골 현지 미디어에 출연해 올 몽골 로케로 징기스칸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서 징기스칸의 진짜 멤버라고는 볼프강 혼자만 나온다.

2023년 랄프 시겔이 새 징기스칸을 결성하자 이로 인해 징기스칸 그룹의 상표권을 놓고 랄프 시겔과 법정 싸움을 했는데 이 소송에서 볼프강이 패소했으며 그로 인해 '징기스칸'이라는 그룹 명칭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송에서 볼프강 하이헬이 승소했더라면 랄프 시겔을 독일에 존재하는 모든 방송국에서 출연 금지를 시키는 것이었다.

  • 헨리에테 스트로벨 : 본래 이름은 헨리에테 파울리너 스트로벨(Henriette Pauline Strobel).[13]

1953년 11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본래 노래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고 징기스칸 데뷔가 노래 경력의 시작이었다.

8살 때 피아노를 배운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한적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치과의사로 아버지는 그녀를 치과 조수로 키울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생애 초반은 VIVIZ엄지를 굉장히 많이 닮았다.

5살 때 피겨 스케이트를 선물받고 너무 기뻐서 매일 빙상을 몇 시간 동안 뛰었으며 9살 때 첫 훈련을 받았고 모두가 그녀의 재능을 인정했다.[14] 13살 때 독일 최남단의 오베레스트도어프로 보내져[15] 5시간의 훈련을 위해 사립학교에 갔다. 오전에는 3시간 운동, 오후에는 2시간 운동을 했고 그녀의 트레이너는 독일 챔피언의 아버지였었다고 한다.

그녀는 작은 대회에 나가 항상 1등을 하였다고 하나 훈련 도중 오른쪽 다리를 단단한 보드에 찧은 사고로 인해 다리와 발목이 골절되어 6개월간 쉬었어야 했고 이후 다시 도전하였으나 계속된 부상으로 인해 결국 스포츠를 그만두었고 빙판 위의 꿈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중학교를 마치고[16] 스위스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 치과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일을 평생 하고싶지 않았고 취리히에서 미용사일을 배웠고 이때 2년간 모델일도 했다고 한다.

볼프강 하이헬과 처음 만난것도 이때라고 하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볼프강 하이헬이 술집에서 밴드 공연을 할 때 너무 거칠게 해서 그만 마이크로 이빨을 쳐서 깨 버렸다. 오너는 게스트로 와 있던 헨리에테가 치과에서 일한다는것을 알고는 볼프강을 그녀에게 보냈고 이때부터 알게된 사이라고 한다. 그들은 반 년 뒤인 1976년 4월 9일 결혼하게 되었고 뮌헨으로 이사가서 치과를 공부했다. 그때 볼프강은 스튜디오 음악을 하고 헨리에테는 집에서 몇 가지의 모델링 작업을 하였는데 이 와중에 1978년 볼프강과의 사이에서 득남했다.[17] 어느 날 볼프강 하이헬은 랄프 시겔에게 새로운 그룹의 멤버로서 영입되었고 헨리에테에게 함께 노래하자고 제안했다. 가끔씩 노래를 부르던 헨리에테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무조건 싫다고 답했으나 볼프강은 헨리에테를 아예 랄프 시겔에게 끌고 가 버렸다. 결국 헨리에테는 노래를 불렀는데 랄프 시겔은 바로 계약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979년 징기스칸으로 데뷔하였고 1985년 그룹 해체, 1986년에는 볼프강과 이혼하였으며 징기스칸 패밀리를 결성하여 1987년까지 무대에 섰다가 가수 생활을 종료하게 된다. 볼프강과 이혼만 했을 뿐 아직도 여전히 친구로 지낸다. 볼프강과의 사이에는 아들 쿠르트(1978년~)가 있다.

시간이 흘러 2005년 볼프강 하이헬, 에디나 팝, 스티브 벤더와 슈테판 트라크 등의 가수들과 함께 복귀 공연을 가졌으며 현재 에디나 팝과 젊은 가수들과 같이 징기스칸 활동을 하고 있다.

2023년 새 멤버들에게 그룹을 물려줬다.

루이 포트기터가 유명해서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레슬리 만도키가 징기스칸의 리더다.

재미있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엄청나게 고생한 사람이다.

1953년 1월 7일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10] 원래 헝가리에 있을 적에 락 그룹에서 드러머를 하던 사람이었던지라 능숙한 드럼 연주자로 징기스칸의 곡 Rocking son of dschinghis khan에서 빠르고 훌륭한 드럼실력을 볼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초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배웠고 야당 학생운동 밴드, JAM이라는 지역 재즈밴드의 리더였다.

1975년 추포 가보르,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여러차례 서부로 가려 했으나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자, 8km길이의 오스트리아-유고슬라비아를 연결하는 철도 터널을 슬로베니아에서 출발해 서부로 달아났다.[11] 참고로 이 때 만도키는 반공운동 혐의로 수배중이었다. 그게 도망간 이유였다.

그 후 난민 캠프에서 잠시 머물고 술집과 바에서 연주를 하며 지내다가 뮌헨에서 음악을 하며 1979년 징기스칸으로 데뷔하여 징기스칸의 노래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동료와 함께 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해 솔로앨범을 발표하였고 1985년 그룹 해체 후에는 1986년 징기스칸 패밀리를 결성하기도 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방한해 에바 체프레기(Eva Csepregi)라는 자신처럼 헝가리에서 태어난 여성 가수와 함께 Korea라는 노래[12]를 발표했는데 이게 인연이 되어 그녀와 결혼하여 자식들도 여럿 두었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당시대의 여러가지 복잡하고도 발전되지 않았던 정보화 시대가 생산해낸 가짜 뉴스이고~ 엄연히 각자의 배우자와 가족은 따로 존재한다).

이후~ 프로듀서로서 다른 가수들과 협업하기도 하였고, 현재는 Mandoki soulmates라는 밴드로 활동 중이다.

에바선과 밥히틀리 그리고 아들 다비드
레슬리 만도키와 아내 에바 만도키 그리고 자녀들

 

  • 에디나 팝 : 본명은 케슈마르키 머리커(Késmárky Marika).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다고 하며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 형제가 있다고 한다.

그녀는 1941년 2월 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6살 때 처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음악 수업을 들으며 학교를 졸업해 1963년에 처음으로 가수를 시작해 그룹 Express의 보컬로도 활동하였다.

이후 본명과 Marina marcu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마침내 Edina pop이라는 간단한 가명을 정하였고 1969년에는 국제무대에 서며 유명해지게 되었다.

1971년에는 배우 귄터 스톨(Günther stoll, 1924~1977)과 결혼하였고 1972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는 7위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1977년 1월 10일 남편 귄터 스톨이 세상을 떠났다.

사실 스톨과의 나이차는 17년(또는 23년) 차이가 나는데 이 정도면 정말 나이차가 심한 것이다.

1979년 뮌헨에서 그룹 징기스칸으로 데뷔하였다. komm doch heim 등의 노래에는 그녀의 솔로파트가 대부분을 이루며 징기스칸 내에서 그녀의 노래실력을 알 수 있다.

1985년 해체 후에는 솔로 가수로 활동하였고 1994년에 낸 앨범 Tomatenrote Lippen에는 Dschinghis khan, Moskau, Hadschi halef omar, Pistolero 4개의 징기스칸 곡들을 리메이크하였다.

2005년에는 원년멤버 볼프강 하이헬, 헨리에테 스트로벨, 스티브 벤더와 슈테판 트라크 등의 멤버들과 함께 재결성, 복귀 공연을 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젊은 멤버들과 함께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2023년 새 멤버들에게 그룹을 물려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수이며 징기스칸의 멤버로 제1대 칸이다.

아버지의 조상은 네덜란드 출신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며 그의 아버지는 프리토리아의 영업 이사였다고 한다. 또 그에게는 한 명의 형제와 4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다.

그는 학교 축제에서 춤을 추고 안무를 만들기도 했으며 학교를 마친 후에는 2년간 그래픽아트를 공부하여 패션 디자이너, 음악가, 댄서의 꿈을 가졌다고 한다.

21세까지 아무런 발레 수업도 받지 않았으나 요하네스버그 극장의 발레 감독을 소개받았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감독은 3개월의 수습기간을 주었고 그는 그 3개월간 연습실에서 매일 6, 7시간을 연습했다.[1] 그는 그럼에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고용되었으나 그의 자리는 맨 끝줄이었다. 그리고 2년 후에 그는 솔로 댄서로 데뷔하여 그의 큰 꿈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발레 단장으로서 독일 울름으로 간 그의 친구의 초대로 루이스는 독일로 떠나 울름에서 1년을 생활하고, 스위스의 장크트갈렌에서 1년을 보냈는데 그는 큰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다가 프랑크푸르트로 여행 갔을 때 1년에 서너번 보는 오디션에서 합격하여 뮌헨의 극장에 고용되었다.

그는 그 극장에서 오페레타를 해야 했으나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나 극장에서의 생활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다양한 TV쇼에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유명한 안무가 윌리엄 밀리(William Millie)가 댄서를 찾고있던 랄프 시겔에게 데려가 관심을 끌도록 하여 그는 오디션에서 통과하였다.

그는 그 전까지 징기스칸의 멤버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때 당시 그룹의 성공을 믿었을 거라고 자신에게 물어봤었다면 아니라고 천번 이야기했을 것이라 말했다.

루이는 데뷔 후 가운데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룹 해체 후에는 1986년 레슬리 만도키, 헨리에테 하이헬과 함께 다른 가수들과 징기스칸 패밀리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으나 1993년 안타깝게도 에이즈로 요절하면서 사람들의 추모를 받고 있다.

 

https://youtu.be/fzFveDshaNM?si=G_Wxw4bXQlw1lI3K

 

1981년부터는 스티브 벤더가 그룹에서 빠짐으로서 5인조로 활동하였다.

1981년도에 발표된 노래들의 공연 영상을 살펴보면 5인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05년 다시 무대에 섰으나 이듬해 사망했다.

1993년에는 초대 칸이었던 루이 헨드릭 포트기터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후 이후 슈테판 트라크가 2대 칸으로 포트기터의 빈자리를 채웠지만 2018년 탈퇴 후에도 보조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2007년에는 레슬리 만도키가 팀을 탈퇴했다.

2018년에 볼프강 하이헬이 독자적으로 징기스칸을 만들어 활동했는데~ 사실, 이 징기스칸은 원래 있던 그룹이 아니라 일개 구성원에 불과했던 볼프강 하이헬이 제멋대로 따로 결성한 징기스칸인 게다.

  • 볼프강 하이헬
  • 레이라 멜라코바
  • 안드레이 이바노프
  • 데니스 이고노프
  • 타냐 게라시모프

여기에 '제2대칸'역할을 하던 슈테판 트라크를 영입해서 데려가는 바람에 랄프 시겔은 클라우스 쿠프레이트를 새로운 '제3대칸'으로 선발해야 했고, 그러다가 세월의 무게 속에서 2023년에는 멤버가 싹~ 물갈이 되었는데......

랄프 시겔과 볼프강 하이헬의 법정싸움에서 결국 원조 창립자인 랄프 시겔이 이겨서 그의 주도하에 완전히 새로운 징기스칸으로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이다.

그렇게~ 원년 멤버들로 부터 정식으로 지위를 승계받아서 새롭게 구성된 멤버는 다음과 같다.

  • 클라우스 쿠프라이트(Claus Kupreit): 백댄서에서 정식 멤버로 승격된 사례이며, '제2대칸'을 담당하던 슈테판 트라크가 볼프강 하이헬을 따라 새로운 팀으로 가는 바람에 새로 제3대 칸으로 선발된 멤버이다.
  • 안젤리카 에를라허(Angelika Erlacher, 1983년 12월 13일 ~): 역시 백댄서에서 정식 멤버로 승되었어며,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나이가 굉장히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팀 내에서는 슈테판 트라크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을 정도로 고참 멤버이다.
  • 람 비랏 페트노이(Läm Virat Phetnoi): 역시 백댄서에서 정식 멤버로 승격되었고, 실존인물 칭기즈 칸이 황인종인 것을 착안해서 멤버 중 한 명을 일부러 황인종으로 선발한 것이 바로 이 사람이며, 댄스의 귀재로 비보잉 등 온갖 어려운 댄스를 전담하는데~ 이름으로 미루어 보면 동남아시아 쪽 출신인 것으로 여겨진다.
  • 마르코 마티어스(Marco Matias, 1975년 6월 17일 ~): 포르투갈계 독일인으로 원래 서커스 단원이었어며, 솔로 가수를 하다가 징기스칸에 합류했다.
  • 셀리나 콜(Selina Kohl): 제일 마지막에 합류한 멤버. 마고 로비와 닮았으며 원년 멤버인 헨리에테처럼 멤버들 중 미모가 가장 뛰어나다.
  • 미하엘 터너(Michael Thurner, 1974년 9월 27일 ~): 오스트리아인이며 뮤지컬 배우 출신인데~ 뮌헨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가 징기스칸에 합류했다.

록그룹 징기스칸은 1979년 데뷔 때부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들이었고, 또 그들이 불렀던 숱한 히트 곡들은 모두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슈가팝 계열의 장엄한 하모닉을 기반으로 하는 노래들이었다.

그리고 흔히~ 댄싱 그룹이라면 가창력이 떨어지는 수도 있지만, 징기스칸은 격렬한 댄스 속에서도 각자의 탁월한 가창력이 조화롭게 분출되는 팀이여서 많은 팬들의 꾸준한 사랑과 인정을 동시에 받았다.

그게 참으로 이상하게도~ 내가 10대 말미였던 시절에서 부터 세상과 이별할 날이 가까워진 오늘날 까지도 변함없이 최고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멤버 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애정을 느꼈던 가수는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루이 헨드릭 포트기터(남성)과 작년(2023년)에 아름다운 대물림과 함께 퇴장한 헨리에테 스트로벨(여성)이다.

 

https://youtu.be/Wj77VB9-D-Q?si=klf4Mfk4To1VJWgU

 

이리하여~ 원년 멤버들은 일찌감치 별이 되신 분(루이 헨드릭 포트기터, 스티브 벤더)들도 계시고, 배신과 함께 법정 퇴출된 인물(볼프강 하이헬)도 있고, 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해서 솔로로 활동하는 분(레슬리 만도키)도 있고 또 70세를 넘어서 80세 나이에 이르기 까지도 정열을 불태운뒤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대물림을 하고서 나처럼 여생을 즐기고 계시는 분(에디나 팝, 헨리에테 스트로벨)들도 있다.

나는 작년인 2023년 부터 직장에서 은퇴한 자유인이 되었고, 징기스칸의 마지막 원년 멤버(에니나 팝, 헨리에테 스트로벨)들도 2023년도에 후배들에게 그룹 타이틀을 넘겨 줌으로서 오늘의 포스팅 주제가 된 모든 스토리를 마무리 하게 된다.

 

내 남은 징기스칸 프로젝트의 여정에서 언제 어디에서든 그 징기스칸 원년 멤버들을 만날 수가 있다면 그 이상의 행운이 또 있을 수 있을련가...???

 

https://youtu.be/xPzoKUX5v1s?si=pZcRh39_cTkDzzY8

히트송 전곡을 수록한 음원 영상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표곡 : Dschinghis khan(징기스칸), Rom(로마), Machu Picchu(마츄픽츄), Moskau(모스코바), Loreley(로렐라이), Aladin(알라딘), Ivanhoe(아이반호우), Temudschin(테무진), Israel(이스라엘), Samurai(사무라이), Puszta(헝가리 초원), Himalaya(히말라야), Corrida(투우사), Madagaskar(아프리카 섬나라), Judas(유다), Kon-tiki(남미 폴리네시아 탐험 뗏목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