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河日記
어느 노트의 비애(작은누나 향숙의 글) 본문
1988 년
제법 두툼한 노트가 생산되었습니다.
그중의 한권이 어느 삼십대 초반의 젊은 주부의 책상에 놓여지게 되었고 그 주부는 이듬해 봄에 아기를 출산할 임산부 였습니다.
노트는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애는 그 임산부의 태아일기 또는 곧 태어날 아가의 육아일기로 쓰임받게 될것이라고.
그러나 그 주부는 무심히 노트를 서랍안으로 밀어넣고는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습니다.
서랍을 열때마다 노트는 주인으로부터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서랍속 다른친구들에게만 손길이 갈 뿐 찬밥 신세를 겪어야 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어느 찬란한 봄날 노트의 주인은 예쁜딸을 낳았습니다.
노트는 생각했습니다. 부디 예쁜아기의 육아일기장으로 쓰임받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나 아기엄마는 여전히 서랍속의 노트를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사를 할때마다 꼬박꼬박 서랍속 친구들에 섞여 다른집으로 옮겨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서랍이 열리면서 주인의 손이 노트에 닿았고 노트는 책상위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노트는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주인의 예쁜아기는 일곱살이 되었는데 육아일기라면 너무 늦고... 나의 주인은 내 생애를 어떻게 시작할까?
이윽고 펜을 든 주인의 손이 노트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서랍속에서 기다렸던 만큼 천천히 정성들인 생애가 그려지기를 바랐던 노트는 금방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리저리 질서없이 휘갈겨지는 주인의 손놀림.
노트는 그렇게 무심한 주인의 낙서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트의 슬픔은 아랑곳없이 다음장도 그다음장도 주인의 낙서는 계속되고...
며칠 후 별의미도 없어보이는 주인의 낙서는 중단되고 노트는 다시 서랍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다시 기나긴 감옥살이가 되어 주인의 무의미한 존재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서랍을 열때마다 희망을 잃지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낙서장이라도 좋으니 책상위에 올려져 쓰임받기를 간절히 꿈꾸었지만 노트의 꿈은 좀체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세월은 또 강같이 흘렀습니다.
한 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지도 이미 몇해 지났을 때 서랍문이 열리고 주인의 손길이 드디어 죽은듯 지쳐 잠든 노트에 닿았습니다.
오래전에 닿았던 그런 손길이 아닌 정성어린 손길 이었습니다.
이마에 1988 이라는 지나간 세기의 숫자가 새겨진 노트는 낯선 세상에 첫발을 들여놓은
달나라에 처음 도달한 지구인처럼 주인의 책상위에 조심스럽게 앉았습니다.
노트도 주인도 한동안 서로 많이 낯선 모양입니다.
주인의 예쁜아기는 이미 열 다섯살 소녀가 되어버렸는데 주인은 노트를 어디에다 쓸까요?
- 노트의 독백 -
나는 지금으로부터 십 수년전 1988 년도에 태어난 한 권의 도톰한 노트입니다.
나는 어떠한 경로를 거쳐 누구의 손에 의해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글을 사랑하는 어느 임산부의 책상위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뻤습니다. 나의 주인이 매일 나를 통해 아름다운 글을 기록할것이고 내몸은 아름다운 시가되고 수필이되어 영원히 나의 주인과 함께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무심히 서랍속 깊숙히 나를 밀어넣은 나의 주인은 나라는 존재가 서랍속에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듯이 보였습니다.
7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의 주인은 예쁜딸을 낳았고 그 딸이 일곱 살이 되던 1995 년도에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서랍밖으로 나올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의 내 주인의 얼굴은 너무도 어두워보였습니다.
곁에는 예쁜딸이 있었지만 조금도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의 주인은 어둡고 슬픈 얼굴로 느닷없이 내게 마구 뛰어들어 내몸을 여기저기 흠집을 냈습니다.
몇날 며칠 그렇게 질서없이 내생애에 무례하게 뛰어든 나의 주인은 어느날 또다시 상처투성이인 나를 서랍속으로 밀어넣어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듯이 서랍속에 오랜세월동안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은 8 년이 흘러 2003년 2 월의 어느날
내 주인의 딸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을때 쯤 나는 주인의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에 의해서 서랍밖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서랍밖의 세상은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내 주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남아있긴 했으나 8 년전에 보았던 질서없고 격앙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나를 어루만지며 한참동안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암울했던 지난날의 흔적을 지우려는듯 내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흉터를
걷어내고 스카치 테이프로서 여기저기 꿰메고 치료를 했습니다.
나는 처음 태어날때의 깨끗하고 반듯한 노트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을만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게 보상이라도 하듯이 스스로 언어전달을 하지못하는 딸을 대신해 조용히 내 생애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이제 특수학교에 다니는 15세 정서장애소녀인 내 주인의 딸의 학교 알림장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정서장애 소녀의 학교와 가정을 이어주는 다리 역활을 한다는 사실이 내 주인과 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내가 이렇게 소중한 일에 쓰임받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못한 일입니다.
내가 기나긴 세월동안 서랍속에 갇혀 죽은듯이 잠들어 있었을 때 나의 주인과 어린딸에게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의 날들이었을까요.
나는 이제 기꺼이 15세 정서장애 소녀의 대변인으로 살아가렵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어떤 노트들보다 더 뜻있는 생애가 될 듯 싶어 행복합니다.
그랬습니다.
20 여일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너무 짧고 슬픔은 언제나 긴가 봅니다.
내 주인의 정서장애 딸은 새봄과 함께 새학년을 맞았고 새로맞은 담임 선생님은 두껍게 생긴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나를 가방안에 그대로 내버려둔채 초등학생들이 쓰는 얇은 알림장에다 알림말을 기록해서 가정으로 보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너무 두꺼워서 다음해에 다른 담임한테까지 이어지는데 대한 부담감이
있을수 있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은 담임의 뜻을 알아차린듯 가방안에 나부시 대기하고 앉아있는 나를 말없이 꺼내버리고는 담임의 뜻에 따랐습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새로운 노트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고 나는 또 내 주인의 서랍안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 까지 나를 기억하고 발견할 때 까지 기나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서랍밑바닥의 어둠에서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죽음같은 깊은잠을 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이시여! 쓰다만 여백의 생으로 서랍속에 웅크린 나의 존재를 부디 잊지 마시라!
그대가 조용히 차분한 마음으로 쓰는 아름다운 시로 내게 온다면 좋겠지만 비록 그대가 고통에 못이겨 느닷없이 뛰어든다해도 그대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기다리고 있음을 부디부디 잊지 마시라!
제법 두툼한 노트가 생산되었습니다.
그중의 한권이 어느 삼십대 초반의 젊은 주부의 책상에 놓여지게 되었고 그 주부는 이듬해 봄에 아기를 출산할 임산부 였습니다.
노트는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애는 그 임산부의 태아일기 또는 곧 태어날 아가의 육아일기로 쓰임받게 될것이라고.
그러나 그 주부는 무심히 노트를 서랍안으로 밀어넣고는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습니다.
서랍을 열때마다 노트는 주인으로부터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서랍속 다른친구들에게만 손길이 갈 뿐 찬밥 신세를 겪어야 했습니다.
해가 바뀌고 어느 찬란한 봄날 노트의 주인은 예쁜딸을 낳았습니다.
노트는 생각했습니다. 부디 예쁜아기의 육아일기장으로 쓰임받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나 아기엄마는 여전히 서랍속의 노트를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사를 할때마다 꼬박꼬박 서랍속 친구들에 섞여 다른집으로 옮겨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서랍이 열리면서 주인의 손이 노트에 닿았고 노트는 책상위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노트는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주인의 예쁜아기는 일곱살이 되었는데 육아일기라면 너무 늦고... 나의 주인은 내 생애를 어떻게 시작할까?
이윽고 펜을 든 주인의 손이 노트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서랍속에서 기다렸던 만큼 천천히 정성들인 생애가 그려지기를 바랐던 노트는 금방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리저리 질서없이 휘갈겨지는 주인의 손놀림.
노트는 그렇게 무심한 주인의 낙서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트의 슬픔은 아랑곳없이 다음장도 그다음장도 주인의 낙서는 계속되고...
며칠 후 별의미도 없어보이는 주인의 낙서는 중단되고 노트는 다시 서랍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다시 기나긴 감옥살이가 되어 주인의 무의미한 존재가 될줄은 몰랐습니다.
서랍을 열때마다 희망을 잃지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낙서장이라도 좋으니 책상위에 올려져 쓰임받기를 간절히 꿈꾸었지만 노트의 꿈은 좀체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세월은 또 강같이 흘렀습니다.
한 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지도 이미 몇해 지났을 때 서랍문이 열리고 주인의 손길이 드디어 죽은듯 지쳐 잠든 노트에 닿았습니다.
오래전에 닿았던 그런 손길이 아닌 정성어린 손길 이었습니다.
이마에 1988 이라는 지나간 세기의 숫자가 새겨진 노트는 낯선 세상에 첫발을 들여놓은
달나라에 처음 도달한 지구인처럼 주인의 책상위에 조심스럽게 앉았습니다.
노트도 주인도 한동안 서로 많이 낯선 모양입니다.
주인의 예쁜아기는 이미 열 다섯살 소녀가 되어버렸는데 주인은 노트를 어디에다 쓸까요?
- 노트의 독백 -
나는 지금으로부터 십 수년전 1988 년도에 태어난 한 권의 도톰한 노트입니다.
나는 어떠한 경로를 거쳐 누구의 손에 의해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글을 사랑하는 어느 임산부의 책상위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뻤습니다. 나의 주인이 매일 나를 통해 아름다운 글을 기록할것이고 내몸은 아름다운 시가되고 수필이되어 영원히 나의 주인과 함께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무심히 서랍속 깊숙히 나를 밀어넣은 나의 주인은 나라는 존재가 서랍속에 웅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듯이 보였습니다.
7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의 주인은 예쁜딸을 낳았고 그 딸이 일곱 살이 되던 1995 년도에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서랍밖으로 나올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의 내 주인의 얼굴은 너무도 어두워보였습니다.
곁에는 예쁜딸이 있었지만 조금도 행복해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의 주인은 어둡고 슬픈 얼굴로 느닷없이 내게 마구 뛰어들어 내몸을 여기저기 흠집을 냈습니다.
몇날 며칠 그렇게 질서없이 내생애에 무례하게 뛰어든 나의 주인은 어느날 또다시 상처투성이인 나를 서랍속으로 밀어넣어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듯이 서랍속에 오랜세월동안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은 8 년이 흘러 2003년 2 월의 어느날
내 주인의 딸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을때 쯤 나는 주인의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에 의해서 서랍밖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서랍밖의 세상은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내 주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이 남아있긴 했으나 8 년전에 보았던 질서없고 격앙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나를 어루만지며 한참동안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암울했던 지난날의 흔적을 지우려는듯 내게 고스란히 남아있는 흉터를
걷어내고 스카치 테이프로서 여기저기 꿰메고 치료를 했습니다.
나는 처음 태어날때의 깨끗하고 반듯한 노트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누군가의 곁을 지키고 있을만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게 보상이라도 하듯이 스스로 언어전달을 하지못하는 딸을 대신해 조용히 내 생애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이제 특수학교에 다니는 15세 정서장애소녀인 내 주인의 딸의 학교 알림장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정서장애 소녀의 학교와 가정을 이어주는 다리 역활을 한다는 사실이 내 주인과 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내가 이렇게 소중한 일에 쓰임받게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못한 일입니다.
내가 기나긴 세월동안 서랍속에 갇혀 죽은듯이 잠들어 있었을 때 나의 주인과 어린딸에게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의 날들이었을까요.
나는 이제 기꺼이 15세 정서장애 소녀의 대변인으로 살아가렵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어떤 노트들보다 더 뜻있는 생애가 될 듯 싶어 행복합니다.
그랬습니다.
20 여일 동안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은 너무 짧고 슬픔은 언제나 긴가 봅니다.
내 주인의 정서장애 딸은 새봄과 함께 새학년을 맞았고 새로맞은 담임 선생님은 두껍게 생긴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나를 가방안에 그대로 내버려둔채 초등학생들이 쓰는 얇은 알림장에다 알림말을 기록해서 가정으로 보냈습니다.
나의 주인은 내가 너무 두꺼워서 다음해에 다른 담임한테까지 이어지는데 대한 부담감이
있을수 있고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은 담임의 뜻을 알아차린듯 가방안에 나부시 대기하고 앉아있는 나를 말없이 꺼내버리고는 담임의 뜻에 따랐습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새로운 노트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고 나는 또 내 주인의 서랍안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 까지 나를 기억하고 발견할 때 까지 기나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서랍밑바닥의 어둠에서 아무도 깨워주지 않는 죽음같은 깊은잠을 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이시여! 쓰다만 여백의 생으로 서랍속에 웅크린 나의 존재를 부디 잊지 마시라!
그대가 조용히 차분한 마음으로 쓰는 아름다운 시로 내게 온다면 좋겠지만 비록 그대가 고통에 못이겨 느닷없이 뛰어든다해도 그대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날을 꿈꾸며 기다리고 있음을 부디부디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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