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河日記

노 부부의 황혼...(큰누나 향기의 글) 본문

작문사설논집

노 부부의 황혼...(큰누나 향기의 글)

독행도자(Aloner) 2005. 4. 27. 12:10
그저께 일주일만에 친정엘 갔다
거실 쇼파에서 어머니와 팔장을 끼고앉아 베란다를 내다보니...어느 봄부터 지금까지 여러번의 꺾꽂이를 거치며 정성스레가꾼 화분들에서...소담스럽게 피어난 국화 무리들이 반갑게 나를 맞는다
매년 가을 이맘때면 어김없이 볼수있는 풍경이다
물론 80의 연세를 눈앞에둔 아버지의 소일 덕분이다

언제나 변함없던 친정집 풍경에서 이제는 하나씩 둘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얼마전 돌아가신 할머니의방이 주인을 잃은채 썰렁해 보이는것이 첫번째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가슴마다 공허하게 만든다
그리고...할머니를 여읜뒤...우리집 막내(밍기 외삼촌)의 심경변화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부모님의 속을 끓이며 독신만을 고집하던 우리막내가
이제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지만...아버지,어머니 가시는 길목에서는 절대 혼자서 외롭게 우는일은 없을거라며...할머니를 떠나보내신후 부쩍 더 쓸쓸해 보이시는 부모님께 말 잘붙이는 예쁜 며느리를 선물하겠단다
선보란 말만꺼내도 미처 말이 끝나기도전에 화를내며...말도 못 붙이게했던 막내이기에 더욱 더 큰 감동이다

할머니 장례식후 온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한가지 공언을 하셨었다
"너희엄마 여태껏 참 고생많았다...내 지금부터는 너희엄마에게 '여보'라고 부를것이다"
집안사람들이 제각각 한잔씩 권해드린 약주에 적당하게 취하신 아버지는 그날 평소와는 달리 말씀이 참 많으셨다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봤다...아버지가 약속을 지켜 주시더냐고...
어머니는 양볼이 붉으스레 홍조를띠며 대답하신다
가끔씩 커피를 손수 끓여드시며..."여보~ 당신도 한잔할래?" 하시고선
두분이 마주보며 멋쩍게 웃어버리신단다
아버진 어머니를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지금껏 마음속에만 담아왔던 그말을...

어머니는 시내에 볼일보러...나는 집에 온다며...
모녀가 같이 집을나서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어딘가로 향해 손을 흔드신다...쑥스러운 표정으로...
나도 따라 뒤돌아보니 아버지가 4층 창가에서서 손흔들어 주고 계신다
난 순간 착각을했다...딸에게 잘가라 인사 하는줄알고...
그런데 어머니 말씀이...어머니가 시내 볼일보러 갈때마다 창가에 나오셔서 잘 다녀오라고 손흔들어 주신단다...어머니의 모습이 안보일때까지...
가끔은 어머니가 깜박잊고 무심코 지나오다가...생각나서 다시 뒤돌아가 손흔들어 주곤 하신단다
그런 두분의 모습이 너무나 정겹다
평소에 내가 알고있던 아버지는 전혀 딴분이셨는데...
과묵하시고...무뚝뚝 하시고...표현에 인색한...
우리어머니 말년에 웃음을 되찾으시고 행복한 순간들이리라

이런 저런 생각에 난 금새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눈물샘이 젖는다

50년 넘도록 깐깐한 우리할머니의 매운 시집살이로인해 항상 눈물짓던 우리어머니...
쓰러져 수족을 못쓰신탓에 어쩔수없이 대소변을 며느리의손에 맡겨야했던 우리할머니...
돌아가시기전 못내 미안해서...
"얘야~ 니하고 내하고 전생에 무슨 죄를지어...이렇게 만나 니를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며 눈물 흘리시던 할머니의 모습에...
우리어머니...그간의 설움이 봄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절에 가서는 젊은 나도 못따라할 정도로 할머니를 위해 얼마나 절을 많이 하시는지...
관절에, 신경통에, 무릎이 아파 힘들어 하시면서도...

아버지 어머니...지금까지 못다했던 사랑의 표현들...
이제 몇배의 진한 엑기스로 음미하시면서...남은여생...할머니처럼 장수하시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기를...

※윗글은 외손녀(밍기)가 시삽으로 있는 동호회에 작년 11월 10일에..
딸(밍기엄마)이 올린 글입니다.

그 당시 노부부의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서 써 본 글 이랍니다.

위의 노부부는...이 홈페이지의 주인 되시는분의 부모님 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