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河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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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실크로드) 답사기

독행도자(Aloner) 2024. 10. 7. 07:35

이번 여정은 중국의 서쪽 끝~ 예전엔 이 지역을 서역이라 불렀던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해외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한국인을 단 한사람도 만나지 못한 여행지는 이번이 유일한 경험이다(오직 우리팀 9명만이 유일한 한국인 여행자였다).

 

비디오 리포트 요약 증보판(이미지 추가)

 

돈황 막고굴에서 유원 고속전철 역까지 동선이 겹친 서양인 패키지 팀이 있었지만 직접 대화를 해보지 못해서 어너 나라의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베제크리크 천불동에서 자유여행을 하는 가족 단위의 서양인과 마주쳤는데, 마침 한남성이 눈인사를 해와서 내가 직접 물어보았다.

Where are you from?

그 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U.S라고 짧게 답해서 미국인 가족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약방의 감초처럼 절대 빠지지 않았던 한국인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도 않았고, 9일간의 여정동안 단 한사람도 볼 수가 없었다.

이번 여정의 종착지(우루무치)의 화령호텔에 도착했을 땐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한국인 임을 먼저 알아본 한 일본인 청년 자유여행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I have to go back to japan tomorrow라며 아쉬워 하더라...

 

왕오천축국전()은 723년부터 727년까지 신라승려 혜초가 다섯 천축국을 답사하고 그들 나라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여행기인데~ 인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과 다른 남아시아 지역, 그리고 보통 중동으로 분류되는 페르시아(이란)까지 여행하였다.

 

8~9세기 사이에 활동한 당나라의 승려 혜림이 쓴 책 《일체경음의》[1]에 혜초가 《왕오천축국전》이란 책을 지었다고 전하는데~ 원래는 책 3권 분량이라거나, 혜초가 인도로 갈 때는 배를 타고 갔고 동남아시아의 각멸(閣蔑)[2], 나형국(裸形國)[3] 등을 거쳤다는 사실은 현재 남아있는 왕오천축국전 부분이 아니라, 원본을 인용한 이 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가 중국 간쑤성둔황 막고굴 장경동에서 당시 장경동을 지키던 왕원록에게서 희귀한 고서 여러 권 사들였는데 개중 섞여 있었다고 한다.

본래 3권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존본은 그 약본이며, 앞뒤 부분은 유실되었는데~ 3권 중 첫 부분 전체와 두 번째 부분 앞머리, 세 번째 부분 끝 일부가 잘려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내용 중에는 중국부터 인도까지 동남아시아 지역을 항해하며 임읍 등을 거쳤다는 과정은 빠져 있고, 남아 있는 부분은 인도에서 육로로 아시아 내륙을 통과하며 정보를 기록한 부분이다.

물론 이만큼 분량만 해도 당시의 지리기록이 부족하다보니 역사적인 발견이었다.

 

"8박9일 간의 실크로드 대장정 1시간17분 분량의 비디오 리포트 풀버젼"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나진옥(羅振玉), 일본의 후지타 도요하치(藤田豊八) 등에 의해 사본의 교정출판이 이루어졌다.[4]

이전에 왕오천축국전의 저술은 당나라 승려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가, 1915년 일본의 사학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가 신라 승려임을 입증하였다고 한다.

사본은 1928년에 독일의 사학자 푸크스(Fuchs,W.)가 독일어로 번역 출판하였다.

한국에서는 1943년 최남선이 원문과 해제를 추가함으로써 이 여행기가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서 출판된 번역본으로는 2004년에 출판된 정수일 교수의 번역본과 2010년에 출판된 지안스님의 번역본이 있다.

정수일 교수의 번역본은 역자가 문명교류사의 대가이다 보니 주석이나 참고자료가 풍부하지만~ 오늘날 《왕오천축국전》은 한국이 아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으므로 한국의 국보로는 지정되지 않았다.

 

 

혜초가 신라를 떠나서 바닷길로 말레이 반도를 거치고~ 천축국(지금의 인도땅)을 탐방하며 중동지역에 이르렀다가, 우르무치~돈황~란저우 등지를 통과하며 장안(지금의 서안)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길...

이른바 실크로드라고 일컫는 비단길을 나도 이제 다니러 출발한다(중국 서안에서 우르무치까지 실크로드의 시작점으로 떠난다).

2024년9월21일(토) : 포항 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제2터미널)로 출발하는 심야 리무진 버스에 탑승함으로서 나의 이번 8박9일간의 중국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2024년9월22일(일) : 09시10분 출발하는 중국 서안(함양공항)행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하여 약3시간 후에 중국 땅을 다시 밟게 된다.

사행천으로 도도히 흐르는 황하강의 물줄기를 상공에서 촬영한 장면이다

 

이로서~ 서안엔 벌써 3번째 방문하게 되었다(물론, 상해도 3번 방문한 바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내가 가장 많이 방문한 지역의 도시 관문은 일본 대마도의 히타카츠(4회)이다.

대한항공편에 의해서 대한민국 인천에서 중국 서안까지 이동한 경로 동선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신고를 하기 전에 먼저 단체 비자 명단에 있는 다른 5명(남성1인+여성4인)과 조인했고, 또 개인 비자로 입국하신 남성 1명과도 합류했다(이분은 중국에서 생활하신 경험이 있는 분으로서 중국어가 가능했다).

그런데~ 입국 심사를 하고 있는 도중에 내 등뒤에서 두명의 여성의 소리가 들렸다.

부산에서 오신 여성 두분이 따로 두명만 단체 비자를 구성해서 우리의 실크로드 탐사 팀에 합류하실려는 거다.

어쨌든, 이리되니~ 총9명(남성3인+여성6인)으로 팀이 구성되었고, 이중에서 부부가 함께 참여하기로는 딱1쌍 뿐이었다.

입국심사 후에 공항 밖으로 나가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윤성룡 : 남성)과 조인해서 37인승 리무진 버스를 타고 천수로 이동하는데...

삼국시대 촉나라의 승상(제갈량)이 수차례 북벌을 감행하여 위나라의 사마의와 번번히 대적했던 가정 지역이나, 통일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채 진중에서 일생을 마감해야 했던 오장원 지역도 모두 지나갈 수 있었다.

오늘 밤은 맥적산 명주호텔에 여장을 푼다.

2024년9월23일(월) : 호텔 조식 후에 맥적산 석굴로 향했다.

 

맥적산의 석굴을 관람한 후엔 오늘 밤에 묵을 숙소가 소재한 영정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이 황하강의 발원지이자 위수의 끝지점을 지나게 되는데~ 이는 황천길이라는 용어의 어원지이며 제갈량의 후계자(강유)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 밤은 황하명주호텔에 여장을 푼다.

2024년9월24일(화) : 호텔 조식 후에 황하강 댐호수로 간다.

보트를 타고 강호수를 거슬러 주변의 황하석림을 관람하는데~ 거대한 첨봉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는 지형의 스케일에 그져 입이 떡 벌어질 따름이었다(하여~ 여기를 임하지질공원이라 한다).

 

보트에서 내린 후에 병령사 석굴로 향하는데~ 뭐 여기도 거암괴석들이 즐비하여 병령단하봉중(만물조상)이란 이름이 따로 있었다.

 

병령사 석굴은 169번 특굴172번 특굴유료 관람 구역이라 입구에서 현지 관리인과 우리 가이드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는 실랑이가 한참동안이나 이어졌다.

결국, 관우의 얼굴상에다 풍채까지 우람한 우리 가이드가 이겨서 우리는 무사히 특굴까지 입장할 수가 있었다.

여기서는 현지 여성 해설사가 먼저 설명을 하고 우리의 가이드가 받아서 통역을 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병령사를 떠난 후에는 란주의 고속철 역으로 가서 고속열차를 탔는데~ 산악 지대여서 터널도 많다보니 열차의 속도가 평균170Km 정도에 불과했다.

어쨌든, 다시한번 가욕관에 도착해서 개통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리되면~ 가욕관도 벌써 두번째로 발도장을 찍는 셈이다.

2024년9월25일(수) : 호텔 조식 후에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가욕관)으로 가서 직접 성루에 올라 넓은 사막의 평원을 조망해보았다.

 

여기서도 낙타를 타는 체험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명사산으로 가서 체험키로 하고 먼저 옥문으로 이동해서 점심 식사를 한다.

돈황으로 계속 이동해서 명사산에 이르렀다.

먼저 난생 처음으로 낙타를 타고 사막을 유람했고, 월아천이라는 오아시스에도 가보았다.

 

그리고~ 명사산의 모래 언덕에도 올라 가보았는데...

모래 경사를 오르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한걸음 내딛어면 반걸음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반복하며 꾸준히 인내심 있게 올라야만 오를 수있는 곳이었다.

모래 언덕의 능선 아래로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오아시스(월아천)이 그림의 압권이 되겠다.

오늘은 돈황해련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2024년9월26일(목) : 호텔 조식 후에 돈황의 명사산 끝자락에 있는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인 막고굴로 향했다.

막고굴도 일반 공개실이 있는 반면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특굴로 나눠서 운영되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서도 한국어가 가능한 여성 해설사가 우리를 이끌었는데~ 한글 받침이 들어가는 문자의 발음은 좀 어려워 해서 "측천무후"발음을 몇번 반복해도 잘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문장을 굉장히 빨리구성해서 나보다도 말을 더 빨리 하는 능력을 갖추었더라...ㅎㅎ

 

오늘 막고굴에서 부터는 서양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기 시작해서 류원 고속열차 역에서는 팩키지 팀까지도 목격되었다.

그러나~ 이번 여정에선 이상하리 만큼 한국인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길이 없었다.

 

막고굴 관람을 마친 후에 류원고속철 역으로 이동해서 고속열차로 선선에 도착한 후 만주누란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2024년9월27일(금) : 아침 일찍 기상해서 쿠무타크 사막으로 갔다.

사막에서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서 호텔 조식 이전에 일찍 출발한 것이다.

사막에 특화된 지프를 타고 사막의 능선을 마구 오르 내리며 아침 에너지를 발산시켰다.

 

지프에서 내린 후에 능선 이쪽 저쪽을 걸어 다니면서 일출을 기다리는 가운데 도 약간씩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 능선 한켠에서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며 떠오르니... 우리는 보고져 한 것은 모두 다 보았노라.

호텔로 돌아와서 조식 후에 버스를 타고 트루판으로 이동했다.

 

손오공사오정, 저팔계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화염산이 그 지역에 있고, 이는 실제로 삼장법사로 일컫는 현장 스님이 거쳐간 구도의 길이다.

 

화염산의 고창고성에서 트랭글 앱으로 해발고도를 찍어보니 실제로 -175m가 계측되어 깜짝 놀랐다.

고창고성에서 나올 때 해발고도가 -125m였는데 입구를 빠져나와 스크린 샷을 찍을 땐 -124로 변했다(트랭글 기준)

 

그래서~ 이지역의 여름 평균 기온이 실제 70도이며, 이름마져도 화염산이 되었겠구나 싶더라.

그리고, 이제~ 베제크리크로 이동했다.

 

다시 베제크리크로 이동해서 천불동이라는 석굴을 또 관람하고 카레즈로 옮겨갔다.

카레즈는 고대 3대 공사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발한 수리 시설이다.

 

그리고 나서 이번 여정의 종착지 우루무치(한자로는 오로목제)에 입성해서 화령호텔에 여장을 푸는데~ 이번 여정에서는 유일한 2연박 호텔이 되는 셈이다.

2024년9월28일(토) : 호텔 조식 후에 바자르 전통시장에 들렸는데~ 내가 자유여행 때도 즐겨 찾는 곳은 시장이었으니 뭐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다만, 시장 입구에 서있는 우람한 이슬람 건축물은 나로선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정말 중국에서도 머나 먼 변두리까지 오긴 왔구나 하는 심정이 확~ 하고 마음에 꽂혔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는 천산산맥천산천지 호수로 가는데~ 버스 안에서 대한민국으로 귀국하는 대한항공편의 앞좌석모바일사전 체크인해두었다.

천산에서 세번째로 높은 고봉이 호수 입구에서도 보이는데~ 해발 5,445m의 바그다 봉이라고 한다.

천산천지 입구에서 부터 바그다봉 방향으로 설경이 눈에 띈다
천산산맥의 설경에 매료되어 전동카에서 미리부터 환호를 지러는 유일한 한국인 관광팀

 

그런데~ 연간 강수량이 16mm에 불과하다는 이 지역에서 어제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 오전까지도 쌀쌀한 날씨여서 좀 춥게 느껴졌다.

하여~ 두터운 옷을 준비하지 못해서 아마도 감기가 들었나보다(컨디션이 엉망이다).

그 대신 천산천지에서 보기 드문 설경까지 볼 수 있으니~ 과연 행운이라고 해야 옳을런지...???

어쨌든~ 천산천지에서 내려와 오늘도 어제처럼 화령호텔에서 2연박으로 계속 묵게 된다.

2024년9월29일(일) : 조식 후에 신장 위구르 박물관으로 갔다.

 

여타한 다수의 소장품도 있었고 또 복제본도 있었지만 특히 미이라 전시관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한무제 시절의 장군이자 유명한 여행가였던 "장건"도 지금까지 미이라로 남아있고, 함께 합장되었던 부인만 흙으로 돌아갔다.
우루무치 박물관의 입구에서 건물 정면을 촬영한 것이다
중국의 육로를 통해서 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이동한 경로 동선

 

박물관에서 나온 후에 우루무치 공항으로 가서 중국 국내선(사천항공) 편에 서안으로 돌아갔다.

비행기가 서안으로 날아 가는 동안 기련산맥을 지날 때 설경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구름이 너무 두텁게 끼여서 기련산맥의 기암 봉우리 자체를 찾아 볼 수가 없다보니 너무 아쉬웠다.

이륙한 후에 장액 상공을 날아갈 무렵에 촬영한 기창 밖의 구름 풍경
서안 공항에 거의 도달했을 무렵에 촬영한 비내리는 기창 밖의 풍경

 

그런데~ 내가 중국 국내선 비행기는 동방항공만 이용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사천항공을 이용해보는 셈인데~ 승무원들이 너무 친절하고 서비스의 질이 엄청 높아서 탄복했다.

대한민국의 항공사 승무원들도 참 친절한데~ 중국의 승무원들이 이 정도나 될 줄이야...!!

그러나~ 서안에 도착해서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어서 대당불야성 야경은 나혼자만 우의를 입은채 돌아보고 왔다.

 

오늘 여장을 푼 호텔이 중국 최고급 수준의 호텔(윈덤 그랜드호텔)인데~ 바로 대당불야성 거리의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반대편 끝인 대자은사까지 쉽사리 다녀올 수있는 포지션이다.

2024년9월30일(월) : 호텔 조식 후에 현장 스님이 서역에서 구해오신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대안탑이 자리한 대자은사를 방문했다.

대당불야성 야경을 감상하며 대자은사 앞에 있는 현장 스님의 동상 밑까지는 와봤어도 직접 대자은사 경내로 입장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안탑은 단순히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막상 가까이 가보면 어머 어마하게 큰 7층 석탑인데~ 역시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보물이었다.

한때는 5층 석탑이었다가 또 나중에는 9층까지 증축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12시40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편으로 3시간 소요 후에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위탁된 배낭 짐을 찾고 또 19시 경에 출발하는 포항행 리무진 버스를 타고 무사히 귀가 했을 땐 이미 자정을 넘기고 있을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