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河日記

아버지가 영면에 드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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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영면에 드시다~!!

독행도자(Aloner) 2024. 12. 12. 20:38

2024년12월10일(화요일) : 낮12시07분경 아버지가 끝내 저세상으로 돌아가셨다(췌장암 및 복막전이).

 

돌이켜보니~ 내가 인도로 출국하기 위해서 집을 나서던 11월14일10시경에는 아버지께서 건강상의 문제가 전혀 없어보였고, 12월1일 입국을 해서 포항 집으로 귀가를 했을 때도 별다른 낌새를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12월4일(수요일) 내가 큰누나에게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가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의문을 피력했는데, 12월5일(목요일) 누나는 엄마를 모시고 미장원에 다녀온 후에 아버지에게 병원에 가보자며 눈물로 호소했고, 12월6일(금요일) 큰형님과 큰누나가 아버지를 모시고 포항 성모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아본 결과, 신장과 췌장 수치가 높다며 췌장암을 의심했다.

12월9일(월요일) 내과전문의가 출근을 해서 궂이 영상 촬영을 하지 않더래도 췌장암 말기라며 병명을 확정하고 호스피스 병동을 추천하여 서명을 거쳐서 대기하던 무렵이었다.

돌연 극심한 통증과 함께 구토 증상이 더욱 심해져서 큰형님이 밤새도록 철야 간호를 해야 했는데~ 사태가 워낙 심각해서 12월10일 화요일 아침부터 규칙을 깨고 긴박하게 가족 면회가 허용되었고, 엄마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치실에서 아버지는 임종을 맞으셨다.

나도 임종 직전에 아버지와 대화 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 나더러 "지금이 오전이냐?" "기야는?(큰누나 향기를 지칭함)"을 마지막 힘을 발휘해서 물어셨고, 작은 누나가 "다음 세상에서 또다시 가족으로 만나자"고 말할 때는 고개를 끄득이며 흔쾌히 응답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 볼 수있었다.

아버지는 이세상에서 일제강점기와 6.25사변을 겪어시며 100년을 사시면서도 단한번 입원한 적도 없으신 분이며, 생애 마지막 며칠간만 엄청난 암통증에 시달리며 의료진에게 빨리 편안히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셨을 뿐~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불과 며칠 전에만 하더래도~ 아버지는 엄마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시며 올해를 넘길 수는 있을지 의문스러워 하셨는데, 순식간에 순서를 바꿔 먼저 세상을 떠나신 것이니... 나는 도저히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결국~ 큰누나의 외동딸(최민경)과 기일이 동일하고, 더구나 영덕 고모부님(정대석)도 같은날 전립선 암으로 별세하시어 동서끼리 길동무가 되어 그다지 외롭진 않을 것같다.

하여~ 큰누나는 자신의 딸(최민경)의 기일 제사에 잠시 다녀오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그래서 아버지는 임종 직전에 그렇게 큰누나를 찾으셨던 모양이다.

※ 영정 사진은 불과 몇년 전에 내가 스마트 폰으로 직접 촬영한 것이다.

2024년12월12일(목요일) : 포항 성모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을 마치고 곧장 리무진 운구차에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고 양학동 집을 거쳐서 포항 시립 화장장으로 갔다.

12시로 예정된 화장절차를 조금 앞당겨서 시작하여 약1시간만에 시신 소각을 끝내고 내가 직접 유골을 인수했다.

어제 둘째 자형과 함께 기원정사가 자리한 형산 정상에 올라 수목장을 하기 좋은 장소를 내가 직접 선정해둔 바있었는데... 그곳은 형산강과 포항 시내 방향이 잘 조망되는 곳이며, 바위가 소나무를 받히고 서있는 절벽이라 사람의 손을 타기가 쉽지않을 걸로 기대하면서 당분간 개발이 될 소지도 없을 것으로 여기지는 장소로 보였다.

바로 그곳에 오늘 큰형님과 둘째자형을 모시고 배낭에 유골을 모신채 납골할 장소로 가서 등산 스틱으로 나무 뿌리 밑에 흙을 파내고 유골을 싼 종이 포장을 묻었다(이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있는 국가유공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선례에 따라서 아버지 스스로가 정한 유언에 따른 것이다).

약식으로 제사를 지낸 후에 하산하던 중~ 대불상과 법당 앞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잘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2024년12월12일(목요일) : 포항 성모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을 마치고 곧장 리무진 운구차에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고 양학동 집을 거쳐서 포항 시립 화장장으로 갔다.

12시로 예정된 화장절차를 조금 앞당겨서 시작하여 약1시간만에 시신 소각을 끝내고 내가 직접 유골을 인수했다.

어제 둘째 자형과 함께 기원정사가 자리한 형산 정상에 올라 수목장을 하기 좋은 장소를 내가 직접 선정해둔 바있었는데... 그곳은 형산강과 포항 시내 방향이 잘 조망되는 곳이며, 바위가 소나무를 받히고 서있는 절벽이라 사람의 손을 타기가 쉽지않을 걸로 기대하면서 당분간 개발이 될 소지도 없을 것으로 여기지는 장소로 보였다.

바로 그곳에 오늘 큰형님과 둘째자형을 모시고 배낭에 유골을 모신채 납골할 장소로 가서 등산 스틱으로 나무 뿌리 밑에 흙을 파내고 유골을 싼 종이 포장을 묻었다(이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있는 국가유공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선례에 따라서 아버지 스스로가 정한 유언에 따른 것이다).

약식으로 제사를 지낸 후에 하산하던 중~ 대불상과 법당 앞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잘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였다.

2024년12월15일(일요일) :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가 외출용 점퍼 포켓 안주머니에서 발견한 통장 3개와 쪽지 유서인데~ 언제쯤 준비한 것인지는 몰라도 나름 죽음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쪽은 개인 정보와 함께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되어 있어서 공개로 편성하기엔 곤란한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