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河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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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사설논집

시모음(원태연)

독행도자(Aloner) 2005. 4. 26. 22:02
1.이별의 노래

하이얀 재를 길게 담고 있는 담배가
수북한 재떨이 위에서 혼자 타고 있습니다
그대는 모르는 일이시겠지요
책상 위에서 밤을 혼자 지새운 커피를 마심
식은 커피와 나의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대는 모르는 일이시겠지요
이른 새벽 화분에 물을 주며
꽃은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대는 모르는 일이시겠지요


2.해명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음에도
당신이 날 훌쩍 떠나버렸듯
울고 자고
기다립네 어쩌네 하는 것은
내가 카레라이스에 섞여 나오는 당근을
한 번도 안 먹어본 것과
꼭 같은 이유입니다.

3.회상

그리운 얼굴 있어
가만히 눈 감으면
그리운 얼굴, 그 얼굴
어디에도 안 보이고
그리운 이름 있어
가만히 입 벌리면
그리운 이름, 그 이름보다
눈물이 먼저 나옵니다.

4.편지 봉투

세월의 때가 묻은 옛 편지 봉투
옛날 주소, 옛날 날짜, 옛날 이야기
한눈에 알아본 옛 편지 봉투
반가운 마음, 반가운 기억, 반가운 두근거림
조심스레 열어본 편지 봉투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옛 편지 봉투


5.미련한 결과

마음이 약해지면
평소에 지나쳤던 것을
자세히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면
이것저것
더 슬퍼질일이 많아진다
이것저것
찾아내서 슬퍼진다

6.사진 한 장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진 한 장
이제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것이 되어버린……

손에 닿을만한 곳에 있으면
자주 보지 않는 이유는

바라만 봐야 좋다는 이야기
지금은 이해가 간다

7.시 선

결국 그대의 시선이
나를 찾으려고 바라본 것이 아니었더라도
멈춰서 돌아본 발걸음이
나를 느껴서가 아니었더라도
그래서 그대가
언제나처럼 무심한 눈빛으로
내게서 시선을 거둘지라도

8.비 옷을 준비하지 못한 어느 날

왜 나는 혼자서만 내리지
눈물은 내게 묻는다
아껴서 그래
너마저 다 없어지면
살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래

나는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9. 이상한 게임

벽에다 대고
탁구를 치는 것
사람 사는 일
사람 사랑하는 일
지쳐 쉬게 되면
그대로 끝나지는 것
벽에다 대고
탁구를 치는 것.



10.불 면


너무 추워
겨울 이불을 덮었는데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뿐이야 하고
눈을 붙여보지만
머릿속 양떼는
계속 우리를 뛰어넘는다
잠마저
아예 날 떠나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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